
달러가 강하면 무조건 달러를 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로고프 교수의 책 '아워 달러, 유어 프라블럼'을 읽고 난 뒤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달러가 지금 실제 가치보다 20%나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달러만 믿고 있는 게 오히려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달러가 왜 고평가됐다는 건가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이자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2025년 4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꺼낸 발언은 꽤 직설적이었습니다. 달러 가치가 적정 수준보다 최소 20% 높게 형성돼 있고, 역사적으로 이런 고평가 구간은 5~6년에 걸쳐 되돌려지는 패턴이 반복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DXY란 달러 인덱스(Dollar Index)를 의미합니다. 유로, 엔화, 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로, 달러 강세와 약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가장 많이 활용됩니다. 이 지수가 2025년 1월 고점 대비 현재 98 부근까지 이미 약 10% 하락한 상태입니다. 로고프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아직 절반만 내려온 셈입니다.
제가 직접 이 흐름을 살펴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외환 보유고 데이터였습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외화 중 달러 비중이 2017년 65%에서 2025년 말 기준 57%까지 내려왔습니다.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미국이 러시아에 금융 제재를 가하는 장면을 지켜본 여러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 자체를 줄이려는 구조적 움직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중국이 CIPS라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달러 약세를 만드는 배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국가 부채가 GDP 대비 90%를 훌쩍 초과한 상태로 통화 강세를 구조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
- 지정학적 갈등이 완화되면서 달러에 부여됐던 안전 자산 프리미엄이 빠르게 소멸 중
- 각국 중앙은행이 외화 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탈달러화 흐름 진행
- 미국과 한국의 기준 금리 차이가 좁혀지면서 달러로 향하던 자본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구간 도래
글로벌 자금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 자본이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는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명확한 숫자가 나와 있었습니다.
글로벌 금융기업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전략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4월 10일 기준 글로벌 투자자들의 달러 헤지 비율이 63%까지 치솟았습니다. 여기서 달러 헤지(Dollar Hedge)란 달러 자산을 보유하면서도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미리 방어하기 위해 환율을 선물 계약 등으로 고정해 두는 전략을 말합니다. 이 비율이 63%라는 건 미국에 투자한 전 세계 투자자 100명 중 63명이 이미 달러 하락에 대비해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2월에 58%였던 수치가 두 달 만에 5%포인트 올랐고, 과거 2022년 금리 인상 전에는 이 비율이 78%까지 올라간 전례가 있습니다. 아직 15%포인트의 여유가 남아 있다는 건 달러 매도 물량이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이치뱅크 외환 전략가 사라벨로스도 같은 시점에 리포트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가 정점을 지났다며 달러 비중을 줄일 시점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연말까지 달러가 6% 추가 하락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유로 달러 환율 목표를 1.25로 내놨습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연준이 금리를 예상보다 많이 인하할 경우 달러가 최대 10%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출처: Bloomberg).
여기서 경상수지란 한 나라가 상품과 서비스 교역, 투자 수익 등을 통해 외국과 주고받은 돈의 흐름을 합산한 지표입니다. 경상수지가 흑자인 국가는 외화 유입이 꾸준해 통화가 강세를 띠는 구조적 기반을 갖게 됩니다. 한국이 달러 약세 국면에서 외국인 자금 유입의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점입니다.
환율 하락이 내 계좌에 미치는 실제 영향
환율이 떨어지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좀 다르게 봅니다. 내 돈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달러 예금이나 미국 주식 비중이 높다면 환차손 리스크를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여기서 환차손이란 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의미합니다. S&P 500이 5% 올라도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원화 기준 수익률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 계산을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실감이 잘 안 되는 부분인데, 막상 수치로 확인하면 상당히 다가옵니다.
반면 코스피에 투자 중이라면 달러 약세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원화가 강해질수록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주식의 매력이 높아지고, 실제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패턴이 나타납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7년 달러 인덱스가 100에서 89까지 하락했을 당시 코스피는 2,000에서 2,500까지 25% 상승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수출 기업 주식의 경우는 반대 방향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처럼 해외에서 달러로 매출을 거두는 기업은 원화가 강해질수록 달러 수익의 원화 환산액이 줄어듭니다. 실적 자체가 나빠지는 건 아니지만 원화 기준 숫자가 작아지다 보니 주가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여겨봐야 할 시그널은 두 가지입니다. DXY가 95 아래로 내려가는 시점, 그리고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3거래일 이상 연속 순매수하는 흐름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이 두 조건이 겹친다면 단순히 환율 숫자 하나가 바뀌는 게 아니라 글로벌 자금 흐름의 방향 자체가 전환되는 신호로 봐야 할 것입니다.
달러 강세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믿음이 있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이 흐름을 살펴본 뒤로는 그 믿음이 꽤 위험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론과 데이터, 대형 금융기관의 전망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지금, 달러 비중만 높이는 전략보다는 다양한 자산으로 분산하는 접근이 현실적인 대비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최종 판단은 항상 본인의 상황에 맞게 검토하시기 바랍니다.